관측되기 전까지는 확정되지 않는다: 꿈과 현실의 불확실성
- 13시간 전
- 3분 분량
본 내용은 꿈의 분위기를 시각화한 연출 이미지이며, 실제 장소 및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번 기록은 꿈과 현실의 불확실성이 어떻게 겹쳐 보였는지를 정리한 글이다. 이번 꿈 역시도 상당히 묘한 꿈이었다.

2026년 7월 5일 오후 1시 식사를 마친 후 홈페이지 작업을 끝낸 뒤, 식곤증으로 강한 피로가 몰려왔다. 운동을 할까, 아니면 그냥 낮잠을 잘까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접속이나 할까?' 하는 생각으로 에어컨 바람에 백색소음을 들으며 무중력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수면에 들기 전 시간은 대략 1시 30분경, 몸에 힘을 천천히 빼고 간단한 암시를 걸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자기 전 상황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느낌에 가깝다.
그리고 서서히 잠이 몰려왔다. 이후 1인칭 시점으로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직접적으로 그 어떤 것도 조작할 수 없는 상태다.
내 옆에는 이전에 사업장에 자주 오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나랑 친하지는 않고, 우리 부모님과 친한 사람이다.

장소에는 거대한 창고 문이 있었고, 그 문은 열려 있었다. 그 안은 정확히 모자이크나 블러 형태로 가려져 있었다.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분위기로 본다면 작업장 같은 곳이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와 대화하며, 사각 스티로폼을 창고 안으로 종이비행기 날리듯 던졌다.

그러자 스티로폼은 천천히 일직선으로 날아가더니, 모자이크처럼 보이는 창고 내부로 들어가면서 마치 그 모자이크와 동화되는 장면처럼 보였다.

아마도 꿈속에서 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그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갑자기 장면이 바로 전환된다.

장소는 내가 사는 동네 단지 내 편의점이다. 이 편의점은 아버지가 일하시는 공간이다. 아버지는 매장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정확히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마감 준비를 대신 도와주고 잠시 밖으로 나왔을 때, 갑자기 친누나가 전동킥보드에서 내려 손잡이에 손을 얹고 있는 상태로 끌고 오면서, 나에게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물어본다.

“야, 인터넷 접속할 때 작은 광고 형태 메시지로 ‘위치를 표시할 수 없으니 고객센터로 문의하라’는 문구가 계속 뜨는데 왜 그런 거야?”
나는 설명했다. 통신업체 쪽에서 우리 IP를 못 찾아서 뜨는 안내 문구 같다고 설명해 줬다.
그리고 셋이서 아파트로 들어갔고, 꿈은 거기서 끝이 났다.

자고 일어난 뒤, 나는 바로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기억을 되새기며 마지막 꿈의 내용을 먼저 정리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옆에 있던 스마트폰을 잡고, 다시 살짝 눈을 떠 메모장을 열었다. 이후 다시 눈을 감고 자판에 손을 얹은 채 쓰기 시작했다.
어째서 마지막 부분만 먼저 썼을까? 꿈의 종류에 따라 기억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꿈은 마지막 장면만 먼저 떠오르고, 그 앞의 장면들은 쓰는 도중 갑자기 생각나는 구조를 가진다.
강한 자각몽의 경우는 영화처럼 선명하게 남지만, 이러한 미묘한 꿈은 항상 이런 식으로 떠오른다.
꿈속에서 시간은 처음 장면이 약 1시간, 그리고 장면 전환 이후가 대략 30분 이내처럼 느껴졌다. 실제 수면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였고, 시간 감각은 거의 동일하게 이어진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다.
생각해 보니 처음에 꿈속에 나온 아주머니는 보름 전 실종됐다고 들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빠르게 부모님께 전화로 사실 여부를 물어보았다.
다행히 부모님은 “그 아주머니는 잘은 모르겠지만, 문자로는 연락이 되는 것 같다.”라고 하셨다.
그렇게 꿈에 대한 오해는 끝이 났지만, 해석은 끝나지 않았다.
관측되기 전까지는 확정되지 않는다
이번 꿈을 해석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개념은 관측 붕괴, 그리고 다세계 해석이다.
관측하기 전까지 상태는 확정되지 않는다. 이 표현은 물리학과 양자역학에서 자주 등장한다. 측정 이전의 대상은 하나의 결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관측 또는 측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특정한 상태로 확정된다.
이번 일도 그 구조와 닮아 있었다.
처음 내가 알고 있던 정보는 단순했다. 그 사람은 보름 전부터 연락이 끊긴 것으로 들었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인식했었던 그 사람은 “연락두절”, “위치불명”, “사건 가능성”이라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께 확인한 순간, 그 불확실한 상태는 하나의 사실로 좁혀졌다.
“문자로는 연락이 된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그 사람은 내 안에서 더 이상 완전한 연락두절 상태가 아니었다. 꿈속의 불명확한 장면이 현실의 확인 과정을 거치며 다른 방향으로 바뀐 것이다.
이 지점이 묘하다.
내가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내 현실 속에서 그 사람은 여전히 “연락이 끊긴 사람”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을 수도 있고, 끝내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 경우 내 인식 안에서 그 사건은 계속 미확정 상태로 이어졌을 것이다.
조금 더 영화적이고 무서운 해석을 하자면, 이것은 다세계 해석과도 닮아 있다.
내가 확인하지 않은 세계에서는 그 사람은 여전히 연락두절 상태로 남아 있다. 반대로 내가 확인한 세계에서는 “문자로는 연락이 되는 사람”으로 확정된다. 정확히 문자 메시지로 현실이 분기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꿈속의 문장 “위치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가 더욱 묘하게 기억이 남는다.

만약 현실에서 내가 직접 확인한 뒤에야 그 사람의 상태가 수정되었다면, 이번 꿈은 마치 관측 전의 불확실한 상태를 꿈속에서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양자역학을 현실 사건에 억지로 입히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되면 사이비 과학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단지 이 꿈은 관측 전과 관측 후, 내 의식 안에서 사건의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개인적인 해석에 가깝다.
관측 전까지는 단절되어 있었지만 확인하는 순간, 그 사건은 다른 상태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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