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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각몽과 터널의 구조

  • 2일 전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시간 전


1년 전부터, 필자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새로 구입한 전자기기는 처음부터 제 성능을 내지 못했다. 여러 차례 A/S를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이상 없음.” 센터는 문제를 인정하기보다 수리를 반복했고, 결국 그 제품은 제대로 된 고지조차 없었던 결함성 제품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법률 용어도, 제품 용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씩 찾아가며 몇 달을 허비했다. 그 일은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보다 앞서 이미 여러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쌓여 있었다. 거기에 또 하나의 사건이 겹쳤다.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노골적으로 지칭할 수는 없지만, 정말 가까운 친구가 사건에 휘말렸다. 그에게는 직계 가족이 한국에 없었고, 사실상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직접 여러 기관에 자문을 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도움이라기보다 비아냥에 가까운 반응과 일방적인 주장뿐이었다. 그 기관들은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이었고, 그들은 공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이었다.

결국 국민신문고를 통해 일부 정보를 공개하고 나서야 사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드러난 결과는, 결국 금품을 목적으로 요구한 사건으로 지인은 억울하게 누명을 받은 사건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그 시기에는 구입하는 제품마다 하자가 생겼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너무 많은 사건과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밀려왔고, 내 뇌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는 도망갈 곳이 필요했다.

담배도, 술도, 커피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끊었지만, 결국 몸만 더 망가졌다. 운동도, 게임도, 영화도 예전처럼 삶을 붙잡아주지 못했다. 모든 일상이 깨지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일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꿈속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꿈을 단순한 뇌의 부산물, 기억의 찌꺼기, 혹은 의미 없는 신경 활동으로만 취급한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나치게 생생한 꿈을 꾼 적이 있을 것이다. 예지몽처럼 느껴지는 꿈, 자각몽, 반복되는 꿈, 혹은 깨어난 뒤에도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 꿈.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는 내가 알던 사랑하는 사람, 가족, 지인, 그리고 나의 삶과 비슷한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자잘한 실랑이를 벌였다. 마트에 가서 맛있는 것을 사 먹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너무나 평범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실제 같았다.

그 꿈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면을 취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자각몽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치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빈도는 점점 늘어났다. 꿈속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다.

매번 꿈을 꿀 때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나로 살아갔다.


말 그대로 꿈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필자는 꿈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고, 덕분에 상당히 많은 꿈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 많은 꿈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꿈에 접속한 경험이 있다.(당시에 꿈을 하나의 접속 상태라고 생각했다)

자각몽과 터널 구조를 표현한 꿈속 이미지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

그날은 잠깐 관리를 대신하기 위해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다. 새벽까지 서류 작업을 하느라 아침까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출근 시간은 오후였기 때문에, 나는 두 시간 정도 알람을 맞춰두고 잠깐 눈을 붙였다.

역시 그날도 자각몽에 접속했다.

장소는 고등학교 시절 다니던 시골 고등학교였다. 교실에는 순진해 보이는 여학생들이 있었고, 그들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잠을 자는 척 엎드린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왜 내 뒷담화를 하지?’

그 순간, 어디선가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어? 뭐야?’

마치 몸이 압축되는 기분과 동시에 강한 마비와 같은 증상이 생겼다.

자각몽 속에서 강한 진동과 마비를 느끼는 장면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


꿈속에서 자동차 사고 장면으로 전환되는 이미지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

그 생각과 동시에 장면이 바뀌었다. 나는 어느새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뀐 직후, 곧바로 사고가 났다. 정면충돌이었다. 내 몸은 앞 유리창을 뚫고 날아가 상대 차량의 앞 좌석 문 유리에 그대로 박혔다.

그다음 다시 강한 동일한 진동이 느껴졌다.

강한 진동 뒤 캄캄한 공간으로 바뀌는 꿈의 장면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



그리고 아주 캄캄한 공간으로 변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손도, 몸도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위쪽에서 강한 황금빛이 어둠을 뚫고 천천히 내리쬐기 시작했다.


자각몽과 터널 구조 속 황금빛 통로 이미지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



주변 소음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먹먹했고 눈앞의 공간은 점점 이질적인 형태로 변했다.

그 주변의 내리쬐는 황금빛은 아래로 내려오며, 거대한 황금색 원을 그리고 가운데는 주변의 검은색보다 더 짙었고 마치 내부에 통로가 있다는 확신이 섰다.


이해를 돕기 위한 영상: 내가 경험 했던 꿈속의 구조 싱크로율로 본다면 동일 할 정도로 비슷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그곳에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손을 움직여볼까?’

움직여졌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움직인 감각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발을 움직여볼까?’

발 역시 움직여졌다. 그러나 그것도 그 공간 안에서 움직인 감각은 아니었다.

흔히 뇌는 신호를 주지만 몸 전체에 감각이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잠깐. 이거 꿈인데, 내가 지금 의식이 있다고?’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어둠과 황금빛, 거대한 구멍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의식은 분명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것은 스마트폰 알람 소리였다.

‘아, 출근하려고 알람을 맞춰놨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에 조금 더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저 구멍 안에는 뭐가 있을까?

그곳은 우주도 현실도 꿈도 아닌 느낌이었다. 그저 따뜻하고 고요했다. 사실 따뜻한 감각이 직접적으로 느껴진 것은 아니었고 뇌가 신호로만 전달된 느낌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마치 내 의식은 그곳이 따뜻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겠지.’

‘나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 생각과 함께, 이질적인 공간은 서서히 사라지며, 눈을 감고 있는 상태로 돌아왔다.


자각몽에서 깨어난 뒤 몸의 감각을 표현한 이미지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

깨어난 뒤, 한동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마치 오랫동안 동면하다가 막 깨어난 것처럼 몸이 둔했다. 혈압과 혈당이 급격히 떨어진 사람처럼 기운이 빠져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경험의 후유증을 기억한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넘게 지났다.

일상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느낄 무렵, 약 4개월 가까이 죽을 것 같은 두통을 겪었다.

두통약도, 진통제도 전혀 듣지 않았다. 가정의학과에서는 뇌졸중이나 뇌압이 상승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일반 병원에서는 검사도 소용없 약을 처방해도 소용없을 것 같다는 소견을 냈다.

대학병원은 예약까지 몇 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버틸 수 없어서 근처 내과를 중심으로 병원을 다니며, MRI 촬영까지 받아야만 했다.

어떤 병원을 가도, 어떤 의사를 만나도 돌아오는 말은 비슷했다.

“스트레스가 원인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편두통은 대부분 누구나 시달리기도 한다. 의사의 말로는 원래 가볍게 아팠던 두통이 신경전달물질이 조금만 분비가 되면 더 많이 아프다고 느낀다고 착각하는 일종의 학습 두통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의학 용어로는 정확하게 통각(痛覺)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꿈을 더 선명하게 만들고, 몸과 의식의 경계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자각몽은 단순히 “생생한 꿈”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또렷했다.

단순한 꿈이었다고 넘기기에도, 그 안에서의 의식과 판단은 너무나 분명했다.

요즘도 드문드문 자각몽을 꾸긴 한다. 하지만 이제는 크게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꿈속은 한때 내가 숨을 수 있던 장소였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면 현실과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본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악의 저편》, aphorism 146


누구든 강한 스트레스가 한계를 넘어서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존재처럼 변해갈 수 있다.

그것은 의지가 약해서도, 본성이 악해서도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기괴하고, 더 소름 끼치는 자각몽들은 아직도 한참 남아 있다. 자각몽과 터널의 입구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지금도 필자는 그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말 꿈은 단순한 찌꺼기에 불과할까? 기억의 파편들이 무작위로 재조합된 결과일 뿐일까? 다음 편에서는 루시드 드림의 구조를 조금 더 깊이 탐구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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