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으로 포장된 뇌: 정의 구현과 참교육의 슬픈 진실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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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내용은 실제 장소, 배경, 인물과는 그 어떤 관련도 없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갈수록 이상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이상했던 구조가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가깝다.
선동과 거짓은 늘 사실처럼 포장되어 퍼지고, 진실은 그 사이에서 천천히 가려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원래 풍자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무단횡단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처럼 번지고 있다고 치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증오할 정도로 싫어하게 되면, 어느 순간 정상적으로 횡단보도로 걸어가는 사람마저 무단횡단자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누군가 그 사람을 향해 차를 몰아붙인 뒤 이렇게 말한다.
“정의 구현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의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사람들은 먼저 확인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정말 잘못했는지, 상황이 조작된 것은 아닌지, 누가 먼저 선을 넘었는지 보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미워하던 대상과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박수를 친다.
필자는 이런 부분, 특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을 지독히 싫어한다.
뭐, 요즘처럼 돈 벌기 힘든 상황에서는 조작이라도 해야 돈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눈앞의 장면이 조작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보지 못할 만큼 분별력 없는 사람들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사람의 뇌를 속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좀 더 웃긴 부분도 있다.
기존에는 그 어떤 논란도 없었던 글이 있었다고 치자. 사람들은 그 글을 평범하게 읽었고, 아무도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단 한마디를 던진다.
“이거 논란이 될 것 같은데?”
그 순간부터 글은 더 이상 글이 아니게 된다.
사람들은 내용을 읽지 않고 논란이라는 이름표부터 본다. 원래 무슨 뜻이었는지, 어떤 맥락에서 쓰였는지, 실제로 문제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누군가 논란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논란을 확인하러 온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논란을 확인하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논란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정의 구현”, “논란”, “참교육”, “사이다.”
이런 단어들이 붙는 순간, 사람들은 확인보다 반응을 먼저 한다. 그리고 그 반응은 다시 돈이 된다.
호문쿨루스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든 충분한 조작을 통해 그럴듯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필자는 조작을 경멸할 정도로 싫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