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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동안, 꿈속에 있었다.

  • 22시간 전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시간 전

© 2026 FR badagga / 고독한바닥가.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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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드림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은 가장 먼저 영화 〈인셉션〉을 떠올린다.

영화 속 연출만 놓고 보면 꿈속에는 정말 쉽게 진입하고, 다양한 상호작용은 물론 구조까지 변경한다.

특히 팽이를 돌리는 장면과 꿈속에 진입하는 방식은 상당히 인상적인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정교한 연출을 생각해냈을까?


하지만 여기서는 영화의 의도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필자가 직접 경험한 꿈의 기록을 탐구해볼 예정이다. 이번 꿈은 비교적 최근에 꾼 꿈으로, 필자가 2026년 4월 16일에 경험한 상당히 기묘한 꿈의 내용이다.


행선지 없는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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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흔들리는 버스에 탑승한 채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버스는 다급하게 계속 같은 곳을 맴돌고 있었다.

‘행선지는 있기는 한 건가?’ 꿈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내 옆 좌석도 비어 있었고, 붉은색 좌석 커버가 보였다.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나는 허리를 곧게 펴고 버스 문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하나둘 올라타기 시작했다. 백미러에는 나를 보고 있는 기사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피했고, 계속해서 올라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많이 올라탈수록 기존에 있던 승객들은 짜증 섞인 말투로 더 크게 말하고 있었다.

그중 한마디가 기억난다.

“아니, 어디에 도착하지도 않을 거면서 사람들만 계속 태우면 어떻게 해?!”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새로 탑승한 건장한 남성이 내 옆 좌석에 앉았다.

그 꿈속의 나는 조금 통통한 편이었다. 다행히 좌석 간격이 심하게 좁지는 않았다.

그런데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옆에 앉은 건장한 남성과 어깨가 계속 부딪혔다.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지 않은 선에서 몸을 피하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앞좌석 머리받침대에 팔을 대고, 흔들리며 달리는 버스의 창문과 주변을 살피던 도중 다리가 아파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장면이 전환되었다.


위성 감시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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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여름날, 나는 아이 같은 체구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어 있었다.

꿈속에서 잠시 ‘이건 뭐지?’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곧바로 꿈은 아무렇지 않게 이어졌다. 또 다른 꿈속의 나로 추정되는 아이와, 그 앞에 있던 친구가 함께 뜀뛰기를 하고 있었다.

장소는 빌라 단지였다. 빌라 앞에는 삼림 같은 조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단지 밖에서 빌라 방향을 바라보면, 빌라가 보일 듯 말 듯하게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뜀뛰기를 하며 조금 서늘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로 추정되는 상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빌라 위에 보이는 옥상 CCTV 있잖아? 저 카메라는 되게 오래전에 만들어졌는데, 아직도 위성에서 보내는 전파 신호를 받아 주변을 감시한대.”

더운 날 가볍게 뜀뛰기를 할 때마다 돔 형태의 카메라는 삼림에 가려졌다가 다시 보였다. 반대쪽으로 뛰고 뒤를 돌아보면, 나무들 위로 그 위성 감시 카메라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중요하다.

나는 그 친구와 상당히 오랫동안 저 위성 감시 카메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기억은 분명히 남아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많은 대화가 끝난 뒤, 빌라 단지 현관문까지 들어가며 꿈은 자연스럽게 또 전환되었다.



그 아이의 삼촌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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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은 자연스럽게 어두운 새벽으로 이어졌다.

조카가 거실로 나와 물을 마시러 주방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조카를 놀라게 하려고 냉장고 뒤에 숨어 괴물 같은 소리를 냈다.

조카는 깜짝 놀라 베란다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내가 숨어 있는 방향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조카가 바라보는 쪽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다가 갑자기 빠르게 달려갔다. 그러자 조카는 소리를 지르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나는 머쓱한 듯 머리를 만지며,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이상하게도 3인칭 시점으로 보였다. 그리고 꿈은 다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다.



떠돌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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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장면이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다.

이번에는 어느 한 가족의 시점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른 아침 아내는 나에게 우리 빌라 근처에 있는 떠돌이 개 이야기를 해주었다.

종은 아마도 몰티즈였던 것 같다. 털을 자르지 않아 코만 겨우 보이고 있었다.

빌라 사람들은 서로 협동해서 그 개를 돌봐주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아내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오후에 잠시 나서서 그 개의 집을 빌라 근처에 손수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밥그릇에는 뜬금없이 아이스커피를 부어주었다. 목이 마를까 봐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몰티즈는 어디선가 숟가락을 가지고 와서, 사람처럼 커피를 떠먹으려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나는 숟가락을 빼앗았다. 그러자 몰티즈는 허겁지겁 커피를 먹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개가 너무 불쌍해 보여 눈물이 글썽였다.

그리고 그 감정과 함께 잠에서 깼다.

“이게 뭔…”

외마디 말을 내뱉은 뒤, 나는 곧바로 다시 누웠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신기하게도 꿈은 그대로 이어졌다.


아내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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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새 빌라 단지 벤치에 앉아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말XX였던 것 같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대낮이었는데 상당히 어두웠다.

그때 갑자기 아들이 울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말했다.

“왜 울고 있어? 넘어졌어?”

그렇게 물었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울기만 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아이의 얼굴에는 단순히 넘어지거나 다친 것과는 다른, 말하지 못한 고민이 어려 있었다.

글썽이는 눈망울이 너무 불쌍하고 애처로워 보였다.

그때 빌라 흡연구역 골목 쪽으로 아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마치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애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경멸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손에 든 담배를 바라보았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

외마디 소리를 내는 순간, 아내가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목에 느슨하게 풀려 있던 넥타이를 잡더니, 곧바로 단정하게 고쳐주었다.

그 장면을 끝으로 꿈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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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독자가 이상하게 느낄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

이 꿈은 버스 장면을 제외하면, 모든 사건이 하나의 장소 안에서 겹쳐 일어나고 있는 구조에 가깝다.

빌라 단지, 삼림처럼 우거진 조경. 옥상 위의 위성 감시 카메라, 어두운 새벽의 집 내부. 떠돌이 개가 머무는 공간, 그리고 흡연구역 근처의 벤치.

장면은 계속 바뀌었지만, 공간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필자는 관측자처럼 그 주변을 돌아다니며, 그 안에서 이어지는 일상과 관계들을 엿보고 있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것을 다른 세계의 또 다른 나라고 부르기보다는, 하나의 장소 안에서 겹쳐 일어난 여러 경험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이 꿈은 아직도 필자의 기억 속에 상당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원래 이 꿈은 아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조금 더 직접적인 문제로 끝나는 구조였지만, 그 부분은 독자에 따라 다소 다른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따라서 본질이 흐려지지 않는 선에서 일부 표현은 약간 각색했다.

중요한 것은 그 구체적인 문제 자체보다, 필자가 그 장소 안에서 계속 다른 역할로 배치되었고 그 역할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관측자처럼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필자는 꿈의 그 어떤 구조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저 위치에 놓인 채, 꿈속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마무리되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필자가 그 안에서 체감한 시간은 대략 4일 정도였다.

관점에 따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게 가능한가?” “조작한 것 아닌가?” “소설을 쓰는 것 아닌가?” “어디서 베껴온 이야기 아닌가?”


독자의 관점에서 그런 의문은 충분히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그 꿈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인 필자조차,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꿈은 때로는 무한에 가까운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짧게 끝나기도 한다.

또한 꿈속의 시점은 1인칭과 3인칭 사이를 자동으로 오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꿈속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동시에, 이상하게도 그때의 내 표정까지 바깥에서 관찰되는 경우가 있다. 마치 내가 꿈속 인물이면서 동시에 관찰자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것을 의학적으로는 뇌가 만들어낸 부산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상, 그 설명만으로는 꿈의 구조 전체를 해석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


흔히 루시드 드림은 꿈을 인식하고, 그 안의 구조를 어느 정도 조작하거나 수정하는 경험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에게 그것은 구조를 마음대로 바꾸는 능력이라기보다, 반수면 상태와 수면마비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착각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수면마비 역시 아직 완전히 해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때때로 꿈과 현실의 경계라고 부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꿈은 내가 만든 무대가 아니라 내가 그저 그 장소에 배치되는 느낌에 가까웠고, 꿈속에서는 4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현실에서 흐른 시간은 고작 7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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